산악인들은 어떤 등산화를 신을까?

산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산에서 등산화는 자동차에 타이어와 같은 존재다. 발이 편해야 마음도 편하다. 마음이 편해야 기분이 좋고 힘도 난다. 편한 등산화는 멋진 산행을 이끌어 내는 가장 중요한 장비다. 등산화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 없을 정도이다.

월간 산 창간 56주년을 맞아 등산화 특집을 준비했다. 산악인 9인에게 가장 아끼는 등산화를 물었다. 그들의 신발장도 훔쳐보았다. 퀴퀴한 냄새와 함께 등산화에 묻은 추억이 흘러나온다.

김미곤 (한국산악교류협회 이사)

산행에 있어 등산화는 0순위로 고려할 장비다. 어떤 등산화를 신느냐가 어떤 산행을 할지를 결정한다. 블랙야크 야크웰트 GTX는 국내 산행은 물론 에베레스트 트레킹까지 다양한 산행에서 함께했으며 가장 아끼는 등산화 중 하나다. 발 모양이 잘 맞아 신경 쓰이는 곳 없이 편하고 오래 걸어도 피로도가 적어 장거리 산행 시 적합하다. 크게 길들이는 기간 없이 처음부터 발에 잘 맞았고 바로 산으로 갔다. 압도적인 포스를 뿜어내는 듬직한 동반자다.  

• 김미곤  PICK
• 블랙야크 야크웰트 GTX (60만 원)
• 비브람 밑창을 가진 가죽 중등산화. 일반 산행보다는 빙벽이나 고산등반에 특화된 등산화라 볼 수 있다.

오진곤 (코너트립 대표)

봄, 여름, 가을 산행을 모두 함께하는 등산화다. 발목을 잘 잡아 주는 튼튼한 등산화라 어딜 가든 문제없이 산행할 수 있다. 믿음직한 동반자다. 

등산화는 발과 발목을 보호하는 중요한 장비다. 산행에 있어 항상 신중히 고려한다. 가벼운 산행이라고 해서 아무 등산화나 신지 않는다. 발목을 잘 접지르는 편이라 발목이 높은 등산화를 고집한다. 접지력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메가그립 급 등산화를 선호한다.

등산화 관리에도 신경 많이 쓴다. 산행 후 에어건으로 먼지를 털고 잘 말려 준다. 가죽 등산화는 왁스칠을 해주고 아닌 것은 방수 스프레이를 뿌려 준다. 관리를 잘 해주어야 신발을 오래, 잘 신을 수 있다. 세탁은 따로 하지 않는다. 등산화를 세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 오진곤  PICK
• 살로몬 퀘스트 4D GTX 포스2  (41만1,000원)
• 트레킹, 캠핑, 오프로드 등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에 특화된 하이컷 트레킹화다. 실제 미 육군 전술화로 널리 사용되는 모델이다.

이하늘 (장거리 하이커)
 

짧게는 몇 십km에서 길게는 몇 천km의 장거리 트레일을 즐겨 걷는다. 트레일러닝을 즐겨하기도 해서 등산화 대부분이 트레일러닝화다. 쿠셔닝은 트레일러닝화의 중요한 요소다. 적당한 쿠션감은 반발력과 안정감을 좌우한다. 

다양한 트레일러닝화를 신어본 후 가장 즐겨 신고 있는 제품은 코오롱 TL-1이다. 이 신발로 미국의 대표적인 장거리 트레일 중 하나인 존 뮤어 트레일을 완주했다. 바위, 흙길은 물론이고 눈길을 지나고 강을 건너며 다양한 자연지형을 걸었다. 미국 유타에서 진행되는 스피드고트 50k 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든 신발이다. 

대부분의 산행 후에는 신발을 햇빛과 바람에 건조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험한 산행 후 신발이 더러워지는 경우 세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주로 트레일러닝화를 신기 때문에 등산화 세탁이 비교적 용이하다. 진흙이나 흙먼지가 많은 트레일로 하이킹이나 트레일러닝을 다녀온 후에는 바로 세탁한다.

• 이하늘  PICK
• 코오롱스포츠 트레일러닝 슈즈 TL-1 _ 21만 원
• 50~100km 이상의 중장거리 트레일러닝에 적합한 모델이다. 안정적인 쿠셔닝이 특징이며, 접지력이 뛰어나 돌길, 산길, 임도 등 모든 환경에서 착용 가능하다.

민미정 (피엘라벤 동탄점 매니저)
 

발 볼이 넓은 편이라 처음부터 잘 맞는 등산화를 찾기가 쉽지 않다. 무지외반증으로 발에 통증이 있어 길들이기 위한 공정이 따로 필요했다. 본사로 제품을 보내 등산화 볼을 넓히는 작업을 부탁했고 이후 시간을 늘려가며 2개월 정도 길들였다. 

한바그 중등산화의 경우 밑창이 단단해서 험한 지형이서 발로 전달되는 충격이 덜하다. 오래 걸어도 피로감이 덜하고 발이 보호되는 느낌이 강하다. 지난 겨울 네팔 얄라피크 등반을 함께했다. 추위 때문에 이중화를 신어야 했지만 익숙한 알래스카 등산화를 고집했다. 멋진 곳을 가장 아끼는 등산화로 완등할 수 있어 기뻤다.

산행 후 등산화를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차적으로 버리는 칫솔을 이용해 등산화에 묻은 흙이나 먼지를 털어낸다. 서늘한 그늘에 건조시킨 후 왁스칠이나 발수제로 등산화의 방수력을 보완한다. 땀이나 비에 젖어 축축해진 등산화에는 제습제 실리카겔을 넣어 건조하는 것도 팁이다.

• 민미정  PICK
• 한바그 알래스카 프로 레이디 GTX (50만9,000원)
• 원데이 하이킹부터 장거리 트레킹까지 다양하게 착용 가능한 클래식 트레킹 부츠다. 발볼이 넓어도 신을 수 있도록 발 앞쪽을 넓게 만든 와이드Wide 핏 디자인이다.

김혜연 (마이기어 종로점 실장)

등산화를 길들이는 방법은 단순하다. 무조건 많이 신고 발과 친해지게 하는 것이다. 산행뿐 아니라 출퇴근, 집앞 산책 등 최대한 자주 신어 주며 시간을 늘려갔다. 

잘 맞는 신발을 신는 것은 산행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크고 작은 부상은 물론 발이 아프거나 다치는 것에 신경쓰다 보면 산의 아름다움과 에피소드를 온전히 즐길 수 없다.

테크니카 등산화는 그동안 신었던 등산화 중 가장 단 시간에 발에 맞은 신발이다. 추억이 담겨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신발이기도 하다. 국내는 물론 네팔, TMB, 파타고니아 등 해외 아름다운 트레킹의 추억이 묻어 있다. 

꼬질꼬질한 등산화를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설레는 마음이 든다. 산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구석구석 해지고 찢어진 부분도 있지만 ‘이번까지만’하며 계속 산으로 데리고 나간다.

• 김혜연  PICK
• 테크니카 포지 2 GTX (38만9,000원)
• 3중 레이어 중창으로 쿠션감이 좋은 등산화다. 신발을 착용함에 따라 사용자의 발 모양에 맞게 적응하는 기술이 적용된 것이 특징이다.

엄홍길 (엄홍길휴먼재단 이사)

블랙야크 등산화는 한국인의 발에 맞게 제작되어 착용감이 편하다. 발목 골절로 오른쪽 발등이 높은 데도 불편함 없이 산행이 가능하다. 야크로드 GTX와 함께한 모든 등반이 중요하고 기억에 남지만 최근에 간 주갈 1봉 초등정 산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6,591m의 원정 후 같이 정상에 올라갔던 셰르파에게 등산화를 선물로 주었다. 추억이 담겨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등산화도 있다. 1988년 에베레스트 로체원정대 당시 처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갈 때 신었던 이중화다. 험한 산행을 다녀온 후에는 등산화를 세탁한 후 깔창을 빼고 보관한다. 

• 엄홍길  PICK
• 블랙야크 야크로드 GTX (32만9,000원)
•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높은 통기성과 접지력을 보여 주는 블랙야크의 중등산화다. 발의 뒤틀림을 최소화하며 산행 시 안정성을 높인 제품이다.

김정곤 (동아대산악부)

1년 전 대만 옥산 등반을 함께한 등산화다. 정상 부위 암릉 구간에서 지친 발과 다리를 보호해 준 고마운 신발이다. 투박해 보이지만 아주 가볍다. 소요시간이 길고 험한 산행도 무리 없이 소화 가능하다. 

등산화를 고를 때에는 직접 신어보고 착용감이 편한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밑창 재질이나 패턴, 깔창의 쿠션 등을 고려한다.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등산화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신어야 산행도 즐겁다.

• 김정곤  PICK
• 코오롱스포츠 하이 포스 B2 GTX (28만 원)
• 코오롱스포츠의 고어텍스 트레킹화. 끈 조절을 간편화한 보아시스템이 적용된 것이 특징이다. 

해발 5,000m 이상, 눈과 얼음이 있는 하얀 산에 갈 때에는 항상 스카르파 이중화와 함께한다. 발에 꼭 맞아 동상 걱정이 

없다. 오래 전부터 함께한 등산화라 추억도 많고 의미도 남다르다. 

원정 산행 전에는 등산화 지퍼에 왁스칠을 한다. 묘한 기분이 든다. 왁스칠을 마치고 지퍼를 여러 번 열고 닫는 것이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등산화를 준비하며 천천히, 안전한 등반을 하고 돌아오자는 다짐을 되뇐다. 등산화는 신어보고 ‘아, 이게 내 신발이다’ 하는 느낌이 오는 것을 골라야 한다. 성능만 따져서는 안 된다. 느낌이 좋아야 함께 오래할 수 있다.

• 노익상  PICK
• 스카르파 빙벽화 팬텀 테크 HD (99만 원)
• 전문 등반가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빙벽용 부츠. 고산 등반이나 빙벽 등반 및 혼합 등반에 적합하다.  

수년전 해외 트레킹에서 만난 등반 가이드가 물었다. 

“한국사람들은 캠프라인 등산화를 많이 신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부심을 가지고 캠프라인 등산화에 대해 설명했다. 캠프라인 등산화는 적절한 무게와 편안한 착용감이 최대 장점이다. 뛰어난 접지력도 빼놓을 수 없다. 등산화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등산화의 꺾임 정도다. 바닥이 너무 부드럽거나 잘 꺾이는 등산화보다는 가벼우면서도 바닥이 딱딱한 등산화를 추천한다. 발의 피로도를 낮춰 주고 오랜 시간 편안하게 산행할 수 있다. 발과 등산화를 연결하는 소품으로서 양말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고 싶다.

운동화 겸 리지화로 신는 등산화 한 켤레를 제외하고는 모두 회사 등산장비창고에 보관한다. 산행 후 신발을 완전히 건조시키고 창고로 내려 보낸다. 습기가 있으면 곰팡이가 생기거나 등산화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빙벽화는 건조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다. 

• 변기태 PICK
• 캠프라인 블랙스톰 시그마 LTD (24만5,000원)
• 토종 한국기업인 캠프라인의 트레킹화로 스톰시리즈의 10번째 제품이다. 편안한 착용감과 뛰어난 접지력이 특징이다. 현재는 블랙스톰 오메가로 리뉴얼되었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